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DHC 디젤동차 (문단 편집) == 역사 == [[1988 서울 올림픽]] 때 국가 이미지 좀 개선해본답시고 개발한 차량이다. 열차의 용도도 '우등형 유압식 디젤 동차'인 것을 보면, 우등식으로 했을 법하다. 1987년 7월 첫 영업운행을 했는데 당연히 경부선 핵심 정차역인 '''[[서울역]], [[대전역]], [[동대구역]], [[부산역]]'''(줄여서 [[서대동부]].)만 서는 진정한 특급 새마을호를 대표하던 열차였다. 이듬해 올림픽을 대비하여 [[경주역(폐역)|경주역]] 방향으로는 1988년식을 '''뽑자마자 넣어버리는 패기'''도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공장에서 출고하자마자 시운전도 안 하고(...) 행선판 끼워서 운행시켰단 소리다. 이후 경주행은 울산(태화강) 연장에 이어 부전까지 연장되었다. 당연히 요즘은 법적으로 정식 운행에 앞서서 시운전을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갓 제작완료한 열차를 바로 운행에 들어가게 하면 안 된다. [[안전불감증]]이 흔하던 구 시대의 잔재였던 셈.] 처음에는 대우중공업이 오랫동안 누적된 디젤동차 제작 기술력을 동원하여 만들었으나 경쟁 업체이던 현대정공도 그간 누적된 디젤기관차 제작 기술력을 동원하여 DHC 동차 제작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 점유율은 대우 6 : 현대 3 : 한진 1의 비율이었는데 DHC 동차는 이 간극이 줄어든 시발점이었다.[* 특히 현대정공은 기관차 제작은 경험이 있었지만 동차형은 이게 처음이었다.] 이후 1988~1989년, 1992~1994년에 DHC 동차의 도입이 이뤄질 때마다 두 회사[* 여기에 한진중공업이 꼽사리 낀 형태였으나 사실 한진중공업 차량은 현대정공 차량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의 간극이 줄어들게 되었고 똑같은 DHC 이름을 걸었음에도 계속된 개량으로 인해 무려 12가지의 파생형[* 그래서인지 초기형 대우산과 초기형 현대산은 명목상 같은 차종이지만 외형이 상당히 이질적이었다.]이 존재했을 정도였다. 당시 [[대우그룹]] 사보에서는 이 열차의 디자인이 [[TGV]]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정공 1992년식은 [[KTX-I|KTX-1]]과 닮았는데, 이 때문에 KTX 도입 초창기 KTX와 새마을을 헷갈려 잘못 탑승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전라선은 개량 전인 1988년부터 1993년까지 PP동차가 운행한적이 있다. 다만 전라선은 선형이 좋지 않았고 대부분 산악지형에 구배가 심해 중간에 멈춰서는 애를 먹었다.[* 그래서 예전에 운행하던 DEC 동차도 전구간 운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익산부터 여수까지 기관차가 연결되어 운행했는데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결국 1993년부터 동차형을 다른 노선으로 넘기고 객차형으로 변경했다. 2004년 7월부터는 다시 동차형이 투입되기 시작했는데 새마을호의 대량 감편으로 인해 동차형이 남아돌기도 했고, 그 사이에 전라선의 복선화 및 개량이 이뤄지면서 운행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대전 - 광주/동대구 - 포항 같은 중단거리 새마을호가 없어지면서 남는 동차를 여기로 이동시켰다.] 이후 1994년까지 차량도입이 이뤄졌으며, 경부선, 경전선, 호남선, 장항선, 동해남부선 등지에 투입되었다. 이 중에서 일부열차는 중련을 하여 복합열차로 운영되었으며, 1998년부터는 경부/호남선의 복합열차도 볼 수 있었다![* 서울 - 부산/서울 - 광주 열차는 대전역에서 분리.] 2004년 KTX가 개통되면서 새마을호의 운행편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했는데, 차량이 남게되어 초기도입분 동차 상당수는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 묶여서 방치되었다. 또한 동대구 - 포항 같은 계통에 투입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서 전라선 새마을호가 동차형으로 바뀌면서 다시 장거리 계통에 투입되었다. 이 시기부터 DHC 동차의 잔고장과 결함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으며 이미 현업에서는 기관사들이 승무를 기피하는 수준까지 되고 말았다. 이후 2006년에 경의선, 진해선 새마을호[* 적자로 인해 통근열차를 빼고 아예 동대구 - 진해 새마을호를 편성했는데, 이는 KTX의 환승수요를 노리고 편성한 것이다. 의외로 수요가 제법 있었던 편.] 운행개시에 따라 초기 도입분 일부가 다시 운행에 복귀했으며[* 물론 전부 복귀한 것은 아니어서 프레임이 휘어버린 103호는 그대로 2007년까지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구석에서 썩어가다가 해체되었다.], 1990~1994년 도입분에 한해서 코레일 CI 도입에 따른 재도색이 2008년까지 이뤄졌다.[* 1988년 도입분은 남은 내구연한이 짧아 신 CI를 칠하지 않고 구도색에 생긴 크랙과 뜯어진 스티커만 다시 보수했다.] 2007년에는 '''최초의 PP동차인 101, 102호''' 동차가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에서 고철로 분해되어 철도동호인들의 공분을 샀다. 사실 상징성을 감안하면 철도박물관에 들어갈 법 했음에도 철도공사에서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이 아쉬운 부분. 2008년 1월 1일에는 장항선 열차의 서대전/익산 연장에 따라서 서천 - 장항 - 군산 - 임피 - 익산을 오가는 희대의 단거리 계통이 등장하고 PP동차가 이 구간을 운행했으나 수요가 지나치게 없어서 몇 달도 안 되어서 없어졌다.[* 사실 이 기이한 계통이 생겨난 것은 장항선이 군산선을 흡수하면서 기존 장항선 열차를 익산으로 연장시킴에 따라 군산 - 익산 - 전주 통근열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에서 아무리 첫 차가 5:30에 출발해도 정작 열차가 장항역에 도착하면 이미 9시가 넘어버리는 문제가 생겨 아침시간대 운행이 사라지고 만다. 계속해서 통근열차를 운행하기에는 수익성이 나빴으며, 열차를 감편시키기에는 정비효율 같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한국철도공사가 익산역에서 주박하던 새마을호 동차 1편성을 이용해 익산 - 서천 열차를 운행하게 된 것. 문제는 요금이 2배 이상 뛰었고, 군산역과 장항역이 외곽으로 이설되었으며, 거기에 본래 전주까지 환승 없이 가던 열차였던게 바뀌어 익산에서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문제가 있어 결국 이용객이 급감하여 4개월 만에 폐지되었다. 오죽하면 막판에는 이 열차의 주 수요 고객층이 '종운을 기념해서 시승한 철도동호인'인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현업을 넘어 철도 이용객 사이에서도 새마을호의 상습 지연, 차량 고장 등이 문제가 되던 게 이 시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